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위구르 관계 (문단 편집) === 현대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른바 [[국립중앙박물관#s-3.2|오타니 컬렉션]]이라고 해서 고대 신장 지역 주요 유물들을 일부 보관하고 있다.[[https://www.donga.com/news/amp/all/20170414/83853690/1|#]] 은연중에 현재 신장 지역을 지배중인 중국이 반환을 바라기는 하지만 일단은 무시하는 중. 세계 위구르 회의, 즉 동튀르키스탄 독립 망명정부도 '중국에게 돌려줘봐야 [[서북공정]]으로 써먹을 테니, 한국이 그냥 보관하길 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2008, 2009년 기준으로 위구르인 유학생들이 한국에도 일부 있었으나 요즘은 위구르인들이 [[서울중앙성원|이태원 이슬람 사원]]에 예배 보러 오는 경우가 목격되지 않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위구르인은 10명 이하에 불과하다고 한다.[[https://newstapa.org/article/ENhKa|#]] 2009년 [[세계 위구르 회의]]의 3대 대통령 돌쿤 이사의 대한민국 입국이 거부된 적이 있었다.[[http://www.asianews.it/news-en/Seoul-gives-in-to-Beijing-and-expels-Uyghur-dissident-17326.html|#]] 반미 성향이 있는 한국 진보 언론에서조차 몇몇 친중 성향 언론인을 제외하면 중국의 위구르인 인권 탄압 및 역사왜곡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 의견을 내는 편이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465727.html|서북공정·서남공정…멈추지 않는 중국 ‘패권주의’ / 이이화]] [[동북공정]] 사례나 [[중화권-위구르 관계]]에서 볼 수 있다시피 중국의 위구르 역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는 한국 입장에서 남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 수소문 끝에 한국에 머물다 현재 제3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위구르인과 연락이 닿았다. 아흐마드(가명)는 2000년대 후반 한국에 처음 유학을 왔다. 한국에서 오래 살아 한국을 좋아했다는 그도 처음엔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망설였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위구르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렵다"고도 했다. 그는 또 “이집트에서도 공부하고 있는 위구르 학생 일부가 중국의 압박 때문에 중국으로 돌려보내진 뒤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 > 아흐마드의 가족 중 상당수는 중국 정부가 ‘직업교육 훈련센터’라 부르는 강제수용소에 들어간 뒤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아흐마드는 서면을 통해서는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했고, 이에 따라 취재진은 그에게 고향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족들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를 물었다. > > 엄마가 2017년경 수용소에 들어갔다는 연락을 공안한테 받았습니다. 엄마는 그 뒤로 연락이 없습니다. 아마 엄마가 거기 간 이유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하고 딸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엄마는 수용소에 들어갔을 때 60살이었고 몸이 안 좋아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왜 수용소에 갔냐고 이유를 묻는다면 딱 하나, 우리는 위구르족이고 위구르족이 그 땅의 원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없애야만 하고, 우리를 없애야만 중국이 마음 놓고 그 땅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 짓도 안 하고 조용히 살아도 그냥 없는 죄를 만들어서 그렇게 한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60살 넘은 우리 엄마가 그 나이에 무슨 죄를 얼마나 짓겠어요? [br] 2018년 초에 친형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한테 연락을 준 사람은 제 누나였고요.. 누나한테 형이 무슨 이유로 왜 죽었는지 물어봤는데 그냥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알고 있으라고, 위챗(중국 메신저 앱) 에서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형 소식을 전달한 누나도 그 소식을 전달한 다음날 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무소식이고요. 누나가 수용소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사촌동생한테 들었습니다. 누나 남편은 누나가 사라지기 훨씬 전에 수용소에 들어갔다고 누나한테 들었고요. 우리 가족들 중엔 형이 죽었고, 엄마, 누나, 형 와이프, 누나 남편이 수용소에 있고 친척들 중엔 제가 알기로 10명 넘게 수용소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몇 명이 더 들어갔고 몇 명이 더 죽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수용소는 말이 수용소지 거기 들어갔다 나온 위구르인들은 나와서 며칠 안에 자살하거나 미쳤습니다. 거기서 무슨 일을 겪어서 나오자마자 그렇게 돼야만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죽은 형과 누나도 다 자녀들이 있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아마 위구르 아이들만 모여있는 수용소에 가 있을 겁니다. 거기서 위구르 말을 못 하게 하고 한족 문화, 한족 방식대로 아이들을 키우는 겁니다. 나중에 커서 자기가 위구르족인지 한족인지 알 수 없겠죠. [br] 위구르인으로서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br] 저는 한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한국을 좋아했습니다. 한국에 사는 동안 안 좋은 일도 없었고, 안 좋은 기억도 없었으니까요. 한국 정부가 우리 일에 침묵한 이유는 아마 한국이란 나라에 아무 이익이 없다고 판단해서 그렇겠죠. 왜냐하면 한국이 중국하고 여러 비즈니스, 또 다른 일에 엮여 있고 우리를 받아준다면 중국하고 관계만 나빠지겠죠. 그게 아니라면 시리아 난민들을 많이 받아 줬다고 들었는데 우리를 왜 안 받아 줄까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상황은 세계 그 어떤 난민보다 훨씬 더 참혹한데 말이죠. 수많은 위구르인들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각 나라는 위구르인들을 받아주는 것이 자기네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죠. 우리를 안 받아주면, 중국에 돌려보내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에요. [br] 지금 저는 제3국으로 왔지만 그래도 한국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한국에 와서 난민신청을 하는 위구르인들을 안 받아 주더라도 중국에 돌려 보내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중국에 돌려보내지 말고 다른 난민을 받아 주는 나라에 보내든지 아니면 그 사람이 스스로 제3국으로 갈 수 있도록 기회나 시간을 주든지 하면 좋겠습니다.” 2021년 [[월간조선]]에서는 [[워싱턴 D.C.]]의 동투르키스탄 망명정부 지도자 살리 후다야르와 인터뷰를 가졌다.[[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2105100035|#]][* 인터뷰에서 중국의 장기적출이나 터키의 중국 지원 등등 근거가 부족한 내용을 다소 과장해서 말하는 부분도 있으나 원래 종교나 민족, 인종을 떠나서 민족주의 독립운동 세력은 정확한 피해상황이나 통계를 입수하기 힘들고 이에 따라서 이런이런 의혹이 있다 같은 주장도 피력할 수 밖에 없긴 하다.] 2월 26일, 세계 위구르 회의는 반기문 IOC 윤리위원장에게 베이징 동계올림픽 취소를 촉구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5205413?sid=104|#]] 2022년 10월 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인권이사회 제51차 회기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발의한 신장위구르 인권 토의 결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https://www.yna.co.kr/view/AKR20221006200600504|#]] 대한민국 외교부 관계자는 다음날 7일 “이번 결정의 내용과 성격, 보편적 가치와 규범 실현, 유엔의 권능에 대한 존중 필요성 등을 감안해 찬성했다”며 “규범에 바탕을 둔 국제질서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국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73505|외교부 “신장위구르 찬성 표결은 국익에 부합…중국과도 소통”]] 한국에 정착한 위구르인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757143?sid=10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